글번호
127928
분류
연구실 및 지도교수 지도에 따른 발전 부문
작성일
2024.05.16
수정일
2024.10.23
작성자
임정희
조회수
253

[2023-2학기] '아우디에 브레이크를 밟고 있지 말라' - 에너지자원공학과 석사 이지원



아우디에 브레이크를 밟고 있지 말라




화학공학과 학부 시절 ‘에너지화학공업’ 강의에서 접한 방사성폐기물은 끔찍했다.

우리 세대에서 당연하고 편하게 사용하고 있던 전기와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난 후 생성된 사용후핵연료,

그리고 사용후핵연료는 처분할 방법이 없어 원전 내에 쌓아놓고 있다는 사실까지 평소에는 접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임시저장만 하다가는 앞으로 방사성폐기물로 가득 찬 대한민국에서 나와 우리 가족, 미래의 세대까지

어떻게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해결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에너지자원공학과 대학원에 지원했다.

인하대학교에 지원한 이유는 ‘권상기’라는 교수님이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연구를 꾸준히 해오셨고

이 분야에 이름있는 분이셨기 때문이었다.

이 교수님께 배운다면 나도 방사성폐기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입학 후에는 내가 들어왔던 화학공학 수업과는 전혀 다른 개념들을 다뤘다.

암석역학, 발파 굴착 공학, 터널 역학 등 어쩌면 재료 역학과 더 겹치는 분야였다고 생각했다.

새로 배우는 이론들을 연구에 적용하려니 막막했고, 내가 배워온 학부 4년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교수님은 면접 때 내가 이 분야에 지식이 없다는 것을 아셨을 텐데 나를 왜 연구생으로 뽑았을지 의문이 들을 정도였다.
교수님은 내게 랩미팅에 먼저 참석해 보라고 하셨다. 연구실에는 박사 한 분이 있었고, 발파와 수소폭발 모델링 연구를 했다.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던 발표 내용들이 매주 듣다 보니 몇몇 단어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displacement라든지 detonation이라든지 그러다 보니 조금씩 연구 주제가 눈에 들어왔고 이런 식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전체적인 틀을 배웠다.


그 후에는 학부 수업을 청강해 보라고 하셨다.

연구 주제를 선정하고 한 번도 다뤄보지 못했던 프로그램 언어를 배우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기본 이론을 몰랐기 때문에 모델링을 하더라도 그 결과를 해석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수업을 들으며 암석 물성과 해석 모델에 대해 부족했던 부분을 배우면서 내 모델에서도 변위와 응력을 분석하고 결과에 대해 논의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수업을 듣는 것이 당연했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고, 처분장은 깊은 심도에 건설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60 %가 결정질암반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땅속 조건과 물성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암반에 처분터널을 건설했을 때의 장기적 안정성 거동도 볼 수 있고, 파괴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는 내게 어떤 재촉도 하시지 않으셨고 늘 묵묵히 지켜봐 주셨다.

가끔 연구 방향을 잘못 잡을 때나 집중하지 못할 때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으셨지만, 그런 얘기를 하시면서 늘 하셨던 말이 있었다.

“언제나 기분 좋은 얘기만 해주는 것은 기분은 좋을 수 있으나 발전에 있어서는 더딜 수 있다.

꼭 필요한 얘기가 있을 때는 그것이 쓴소리더라도 말을 해주는 것이 어쩌면 더 상대를 아끼는 것일 수 있다.”라는 말이었다.

정말 잘되길 바란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기도 하고 혼도 내는 것이 당장은 속이 상할 수 있지만

멀리 내다봤을 때 시간을 아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고 바르게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연구는 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모델을 만들 수 있게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재밌었는데 이제 진짜 연구를 위한 모델을 만들고 구현해 보려니

여기에 맞는 명령어를 찾는 것부터 조건을 입력하는 것까지 어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었다.

모델 구현과 조건을 입력할 때는 정당한 조건과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문헌을 많이 찾아봐야 했다.

특히 국내 연구는 드물어서 영어 논문을 찾아봐야 했으며 연구가 늘 제자리 걸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가장 힘들었던 때였다.

수업은 수업대로 과제는 과제대로 랩미팅은 랩미팅대로 하루가 모자랐다. 할 게 많은데 할 일이 계속 주어지니 스트레스가 날로 커졌다.

그럴 때마다 교수님은 할 일이 많아서 힘들다 말고, 내가 공부할 게 많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라며 말씀해 주셨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러한 과정들이 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들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니 공부나 연구 효율도 늘고 재밌게 느껴졌으며, 생각의 전환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 후로는 할 일이 많아도 허허 웃으며 묵묵히 해내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연구는 분명 어렵고 힘들지만, 난관을 극복했을 때는 그 어떤 무엇보다 신나고 뿌듯했다.

남들이 해내지 못한, 생각하지 못한 것을 구현하고 분석하면서 나도 한 분야에서 선두를 할 수 있음에 벅차기도 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나는 내 능력에 자신이 없었다.

내가 하는 정도는 다들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연구를 함에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교수님은 다짜고짜 연구가 재밌냐고 물으셨다.

난 재미있다가도 화가 나고, 막상 안 풀리던 게 풀리면 기쁘기도 한데 다시 또 막히는 게 생기면 화가 난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진학하기에는 앞으로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을 느껴가며 연구하는 게 힘들 것 같아 자신이 없다고 했다.

교수님은 가만히 들으시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본인도 연구할 때 그렇게 힘들고 짜증 나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하셨다.

풀릴 것 같으면서도 잘 안되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걸 넘어서는 순간에 즐길 수 있다면 그게 연구에 묘미고 발전이라고 하셨다.

이어 “입학했을 무렵을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로 들어와 지금은 처분장 모델을 구현도 하고,

더 나아가 국내에 거의 없는 수리-역학적 복합거동까지 해내고 있지 않느냐.

1년 동안 큰 발전을 해온 성장 속도에 놀라기도 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기대가 된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동안 나에게 크게 재촉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던 것도 스스로 잘 해내고 있다는 걸 인정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없다고 한 말에 대해서는 나보다도 더 속상해하셨다. “해보지도 않고 마음속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있느냐.

나는 지원이가 아우디 혹은 벤츠 그런 멋진 스포츠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역량이 그렇게 멋진데 그 안에서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그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엑셀을 밟아 보자. 멋진 스포츠카로 아우토반을 달려봐야 하지 않겠어?”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비유가 너무 유치하다고 속으로 웃어넘겼지만,

지금까지도 이 말을 텍스트 그대로 기억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내게 퍽 인상적이고 감사한 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날을 계기로 내 역량에 의심보단 믿음을 가지게 되면서 점차 자신감을 찾아갔다.


연구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을 무렵, 학부생들이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과

주민수용성 개선에 관련된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교수님과 직계 연구를 하고 있는 나에게 세미나를 요청했다.

세미나 주제는 처분장 건설에 있어 국민은 님비효과처럼 반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떻게 인식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나는 그동안 조사해왔던 자료를 기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처분장 건설 허가를 받은 핀란드와

두 번째로 허가를 받은 스웨덴의 사례를 통해 선두 국가들은 어떠한 전략으로 진행했는지 타임라인을 정리하여 발표했다.

이 두 나라는 국민이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으며, 처음에는 반대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국민을 꾸준히 말로 설득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하다는 것을 투명하게 증명해 낼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이었다.

우리나라도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에 원자력 활동이 조건부로 포함되면서 2050년까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 단계를 문서화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국내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고 있는 원전 내 습식저장시설은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2030년부터 포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현황으로 보아 처분장 건설 및 운영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선두 국가들의 장점을 토대로 우리나라에 알맞는 전략을 세워야 하며,

나 역시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연구를 하는 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안정성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이러한 연구들이 더욱 많이 진행되어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멋진 전략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를 마쳤다.

그리고 내 발표에 이어 교수님은 이론적인 내용과 현장 지식들을 바탕으로 처분이 왜 심층에 되어야 하는지와 실증사례 등을 보충 해주셨다.

그리고 공모전 팀은 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며 내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교수님께서는 늘 학회나 한 학기가 끝나면 어떤 걸 느꼈는지 혹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셨다.

그동안 난 어떤 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 특별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고 싶으면 했고, 아니면 안 했으며, 그렇기에 궁금한 점도 딱히 없었다.

늘 내 답변은 “재밌었습니다.” 혹은 “신기했습니다.”로 마무리되곤 했다.

미적지근한 답변을 하면 교수님께서는 재밌었다고 느낀 5가지의 이유를 말해보라고 시키시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이유를 억지로 생각해 내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학회에 가면 어떤 게 재밌었는지 문득 생각해 보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질문이 생기고 연구에 접목할 만한 아이디어들을 얻기도 했다.

나중에는 공유하고 싶은 지식이 생기면 기억했다가 말씀드리고 싶어 더 꼼꼼히 공부하고 기억해 두게 되었다.

점점 말하기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내 생각을 말하고 질문하는 것이 창피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발표라면 목소리도 작고 대본 없이는 못 했던 내가 대본 없이도 발표에 여유를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졸업 발표를 교수님들과 학생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할 수 있었고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내 생각과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에 다른 교수님들도 내 열정과 노력을 인정해 주시듯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나도 교수님도 모두 뿌듯한 발표였다.


지난 2년간의 석사과정을 돌아보면 나는 지식의 폭과 깊이가 깊어졌을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많은 성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입학했을 무렵 기본 베이스가 달라 공부량도 많았고, 그만큼 연구에 어려움도 겪었지만,

이제는 학부의 화학공학 지식과 석사의 에너지자원공학 지식을 융합할 수 있어 나만의 강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나에 대한 부족한 믿음으로 소심하던 성격에서 내 생각을 바로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다방면의 성장에 있어 늘 묵묵히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분을 감히 지도교수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젠가 내가 교수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 “제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요?”.

교수님께서는 발전에 끝은 없지만, 그렇기에 어디까지 발전해야 할지 정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기준을 모를 때는 적어도 지도교수는 뛰어넘고 가거라. 그게 지도교수가 있는 이유이니까.”라는 말을 남겨주셨다.

아직은 내가 교수님의 지식과 인품을 뛰어넘기에는 한없이 모자란 학생이지만,

그럼에도 나를 믿어주는 교수님과 연구실 사람들이 있어 나중에는 꼭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청출어람 하고 싶다.


그렇게 나는 박사과정에 진학한다.

내 인생에 가방끈이 이렇게 길 줄 몰랐다는 가족들 말이 웃기기도 하고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연구에 진심일 수 있음에 놀라곤 한다.

연구라는것이 꾸준히 하는 만큼 정비례하게 성과가 나오면 좋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기에 언젠가는 또다시 힘든 일들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구는 얼마나 몰두하고 얼마나 오래 앉아서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지금의 내 모습이 대견하고 마음에 든다.


나에게 석사과정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의 성숙한 내가 되기까지 석사과정 동안의 경험이 없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 더욱 발전할 내 모습을 상상하며, 그리고 3, 4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다시 뒤돌아봤을 때

지금보다 더 인격적, 연구적으로 모두 성장해 있기를 바란다.


공부와 연구에 흥미를 가지도록 응원해주고 지지해 준 교수님과

웃음을 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우리 연구실 식구들에게 공을 돌리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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